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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살려라! - 찰스 2세와 중세의학

vitaminjun.md 2017. 6. 16. 23:49


 [찰스 2세(Charles II)]



17세기 영국의 국왕이었던 [찰스 2세(Charles II)]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어 소개하고자 합니다.
찰스 2세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보자면 아버지였던 찰스 1세는 올리버 크롬웰이 주도했던 청교도혁명 때 처형당합니다. 
이후 찰스 2세는 스코틀랜드, 프랑스, 스페인등을 전전하다가 
1660년 왕정복고가 이루어지면서 영국 국왕이 됩니다.
한번쯤은 들어봤을 그리니치 천문대를 설립한 사람이 이분입니다.


이야기는 런던의 화이트 홀 궁전에서 시작됩니다.
내용은 약간 혐오스러울수도 있습니다.



[ 1685년 2월 2일 월요일 아침 8시 ]
찰스 2세는 고열에 시달리다가 잠에서 깨어납니다. 
그리고 그는 침실에서 면도를 하다가 극심한 통증을 느끼고 의식을 잃게되죠.
왕이 정신을 잃는 응급사태에 6명의 왕실 주치의가 긴급하게 모였습니다. 
이후 6명의 왕실 주치의는 찰스 2세를 적극적으로 치료합니다. 
당시에 있었던 최신의 방식으로 말이죠.


[ 2월 2일, 월요일 ] 
주치의가 처음으로 한 일은 왕의 오른팔 정맥에서 1파인트(0.568리터)의 혈액을 뽑아 내는 거였습니다.
[방혈술]이라 하여 당시 유럽에서 흔한 치료법이었습니다.
신체를 자극하기 위해 [뜨겁게 달군 컵]을 피부에 닿게 하여 큰 물집을 만들었습니다. 
왕의 의식이 여전히 회복되지 않자 추가적으로 왼쪽 어깨에서 0.5파인트의 혈액을 뽑아냅니다.
그리고 [토하는 약] [설사를 유도하는 약]을 먹이고 [관장]을 시행합니다.
이후 왕의 의식을 깨우기 위해 머리카락을 깎았고 두피에 물집이 있어 고약을 붙였는데 
찰스 2세의 의식을 되돌아옵니다!

여전히 완벽한 회복이 안되었기에 관장을 더 시행하고 물집있는 곳에 고약을 붙였습니다.
양쪽발에 있는 물집에는 특별히 송진과 비둘기 똥으로 만든 고약을 붙였고,
뇌를 깨끗히 씻어 내기 위해 식물의 뿌리로 만든 가루를 코에 넣어 일부러 재채기를 시키기도 했습니다.


[ 2월 3일, 화요일 ] 
왕의 의식은 어제 보다 또렷해졌습니다. 
대신 통증이 더욱 심해졌죠.
왕실 주치의는 회복되는 과정이라 판단하고 10온스의 피를 더 뽑습니다.
다양한 약초들로 만든 약과 여전히 토하는 약도 적당한 간격을 두고 계속 복용시킵니다.
밤이 되자 왕의 상태가 나빠집니다.


[ 2월 4일, 수요일 ]
역시 피를 또 뽑습니다.
상태가 나빠졌기에 육두구와 화이트 와인등으로 만든 약과 
[양의 위에서 나온 위석]도 약으로 복용시킵니다.
그리고 특별히 [사람의 두개골에서 추출한 추출물 40방울]이 포함된 약도 먹입니다.


[ 2월 5일, 목요일 ]
왕은 의식을 잃습니다. 병세는 악화되고 발작까지 일어나기 시작했죠.

물집도 지속적으로 생겼지만 방혈과 관장은 계속 이루어집니다. 
교회에서 신비의 가루를 받아와서 먹이기도 합니다.
앞서 있었던 특별한 치료제는 계속 복용시켰죠.


[ 2월 6일, 금요일 ]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왕에게 방혈을 계속 시행했으나 피는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왕국에서 좋다고하는 모든 약초와 동물의 추출물을 구해서 먹이지만 차도가 없었죠.
그리고 2월 6일 정오무렵.
찰스 2세는 54세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왕실 주치의들은 의사로써 자신들의 주군인 찰스 2세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겁니다.
하지만 어째서 이런 끔찍한 치료를 시행한걸까요?
현재의 개념에서 생각하면 말도안되는 치료겠지만 당시는 최신 & 최선의 치료법이었습니다.



[ 4 체액설 (4 humors theory) ]



당시 인체는 네가지 체액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 피(blood), 점액(phlegm), 흑담즙(black bile), 황담즙(yellow bile) ] 이렇게 말이죠.
이는 고대 그리스의 4원소설에서 기원한 것으로써 사체액설(4 humors theory)이라고 불렸습니다.
네가지 체액들이 불균형할 때 병이 발생한다고 믿었고, 
병을 낫게 할려면 체액들의 균형을 절묘하게 맞춰야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피를 빼기 위해 방혈을 하였고, 
점액을 빼거나 담즙을 빼기 위해 구토제나 하제를 먹였던 겁니다.
그리고 각각의 체액들은 기운을 가지고 있다고 봤습니다. 
[뜨겁고, 차갑고, 습하고, 건조한 기운]을요.
이것또한 정상으로 만들어야했기에 각 성질에 맞는 약초를 복용시켰습니다.



사체액설은 시간이 지나면서 거의 사라졌습니다. 
현대의학의 기초가 되는 실험생리학과 해부학등이 자리잡으면서 
관념적인 내용을 기초로 했던 중세유럽의학은 잘못된 것이라 판명된거죠. 
의학이 현대의학으로 발전할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찰스 2세가 받았던 치료를 너무나도 당연히 우리가 받고 있을 수도 있었을테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