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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19세기 외과 혁신

vitaminjun.md 2017. 9. 14. 13:49

의학의 역사를 살펴볼 때 외과수술의 역사는 의외로 오래되었습니다. 
고대 인도문명에서는 잘려진 코를 재건하는 성형수술을 했었고,
중남미지역의 마야, 잉카문명에서는 머리에 구멍을 뚫는 천두술을 시행하기도 하였죠. 
그 외에도 골절을 치료하는 정형외과적인 수술은 더 오래전부터 시행되어 왔을겁니다.

그러나 이런 과거의 수술들은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위험천만한 의료행위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해부학과 생리학이 정리되고 확립되면서 외과 역시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9세기에 이르러 외과수술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 낼 큰 혁신이 일어납니다.
바로 [마취법] [무균수술법]의 발명이었습니다.



1.
수술은 필연적으로 통증을 수반합니다. 
마취법이 없던 과거의 환자들은 이러한 수술 통증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19세기 이전의 수술이란 절단술이 대부분이었기에 맨정신으로 팔다리가 잘려나가는 것을 그대로 참고 견뎠어야 했죠.
수술을 받기 위해 대기하던 환자가 통증이 두려워 도망가는 일이 잦았고,
수술 도중 통증으로 발버둥치는 환자를 구속하기 위해 힘센 보조들이 항상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1843년 1월, 과학자였던 조지 윌슨(George Wilson)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마취없이 왼쪽 발목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받은 수술경험을 기록하는데 신과 인간에게서 버려진 느낌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외과의사들은 수술 속도를 중시하기 시작합니다.
수술로 인한 통증은 줄일 수 없으니 수술을 빨리 끝내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단축시키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1824년 고관절부 절단술이 20분 가량 걸렸으나, 
10년 뒤인 1834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제임스 사임(James Syme)은 이 수술을 90초만에 끝냈다고 합니다.

[로버트 리스턴(Robert Liston), 1794~1847]


당시 세계 최고의 스피드스터 외과의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로버트 리스턴(Robert Liston), 1794~1847]이었습니다.
그는 다리 하나를 절단하는데 2분 30초면 충분했고, 심지어 28초만에 절단술을 시행하였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스피드와 퍼포먼스를 워낙 중시한 인물이라 급한 경우에는 메스를 입에 물고(!) 수술을 진행한 적도 있다고 하니 
세계 최초의 삼도류 외과의사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속도는 환자 생존률과 크게 상관 없었습니다.
오히려 워낙 빠르게 수술을 진행했기에 정확한 수술을 할 수 없었고 수술 상처를 통한 감염으로 사망하는 경우도 잦았습니다. 
로버트 리스턴의 경우 수술 도중 수술보조의 손가락도 같이 잘라버린 적도이있었는데 수술 후 환자와 수술보조 모두 감염으로 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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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취가스로 쓰였던 [아산화질소] [에테르]가 발견되었지만 처음에는 그저 단순한 유흥거리였습니다.
이 가스를 흡입하면 기분이 좋아졌기에 파티나 모임을 통해 집단으로 흡입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던 도중 미국의 의사 크로포드 롱(Crawford W. Long)이 에테르를 마시고 난 다음에는 여기저기 부딪혔도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이를 신기하게 여긴 크로포드 롱은 1842년 3월 30일 에테르로 환자를 재우고 수술을 진행해봅니다.
마취는 성공적이어서 환자는 통증을 느끼지 못했죠.
이후 [클로르포름(chloroform)]을 포함한 다양한 마취가스가 만들어졌고, 

마취가스의 효과가 공개적으로 인정받으면서 수술로 인한 통증의 두려움은 많이 사라지게 됩니다.



2.
현미경을 발명하고 세균이란 존재를 발견한지는 오래 되었으나 이것이 병을 일으킨다는 생각을 하진 못했습니다.
그저 어디에나 존재하는 작은 미생물정도로만 인식하곤 하였죠. 게다가 청결에 대해서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19세기 당시 병을 일으키는 원인은 오염된 공기 즉, [독기설(miasma theory)]이 더 지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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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gnaz Semmelweis Monument , Budapest ] 



하지만 헝가리 출신 의사였던 [ 이그나츠 제멜바이스(Ignaz Philipp Semmelweis), 1818~1865 ]는 

산모에게서 산욕열을 일으키는게 독기가 아닐지 모른다고 추측합니다.
의사들이 운영하는 빈 종합병원의 제1진료소와 산파들이 운영하는 제2진료소 사이의 사망률 차이가 너무 났었습니다.
그리고 제멜바이스의 친구였던 야콥 콜레치카(Jacob Kolletschka)가 1847년 부검을 하다가 메스에 손을 베이는데 
산욕열과 동일한 증상으로 사망합니다.
제멜바이스는 부검을 할 때 메스에 묻었던 무엇인가가 상처를 통해 자신의 친구에게 전파되었고 
그것이 산욕열을 일으켜 친구를 죽였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합니다.

그렇다면 똑같이 의사가 부검을 한 손으로 산모를 만졌을 경우 산모에게도 무엇인가를 전해져 산욕열을 일으킬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을 합니다.
즉, 의사들의 더러운 손이 원인이라고 추정한거였죠.
1847년 5월, 그는 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의사들이 산모를 진찰하기 전에 [염화칼슘용액]으로 손을 소독하게 만듭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18.3%에 달하던 산모의 사망률이 손을 씻기 시작한 다음 달부터 2.2%로 줄었고, 
그 다음 달에는 1.2%까지 감소시키는 성과를 거둡니다.
하지만 제멜바이스의 이론은 당시 빈 의학사회에서 철저히 무시당합니다. 
이후 파스퇴르와 코흐에 의해 세균병인설이 발표되면서 제멜바이스가 옮았음이 증명됩니다. 



[ 조셉 리스터(Joseph Lister) , 1827~1912 ]



파스퇴르는 세균에 관해 다양한 연구를 했는데 그의 와인의 발효와 부패에 관한 논문을 흥미롭게 본 의사가 있었습니다.
바로 영국의 조셉 리스터(Joseph Lister)였습니다.
그는 상처부위와 수술실을 소독하는 법을 찾기 시작합니다. 

여러 실험끝에 [석탄산(carbolic acid)]이 살균효과가 뛰어난 것을 확인하고 이를 수술에 사용합니다.
1865년 8월 12일, 소독을 하고 난 다음 복합골절에 대한 수술을 하였고 이후 수술부위에서 감염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석탄산에 의한 살균법이 수술 후 감염을 막는 것에 효과가 있었던 겁니다.
이후 사례들을 모았고 1864년에서 1866년동안 사지절단술의 사망률은 45%였으나
석탄산을 활용한 무균수술법을 도입한 경우 사망률이 15%로 낮아짐을 논문으로 발표합니다.


[ 외과 치료에서의 무균적 수술법, On the Antiseptic Principle In The Practice of Surgery , 1867 ]http://www.bmj.com/content/2/5543/9




이러한 무균수술법은 전세계로 뻗어나갔고 이전까지 금기시 되던 흉부와 복부 수술도 가능하게 만듭니다.
흉부장기와 복부장기는 감염에 매우 취약하기에 무균수술법이 정립되기 이전에 시행되었던 수술에서는 대부분 사망했을겁니다.
그래서 금기로 전해져 내려왔을 것이구요.
이제는 흔한 충수절제술이 최초로 시행 된건 겨우 1880년이었습니다.



3.

[ 드라마 뉴하트, 2007 ]


무균시술은 환자뿐만 아니라 수술 집도의에게도 중요합니다.
세균은 환자에게만 있는게 아니라 의사에게도 있으니깐요.
이를 막는 도구중 하나가 [수술용 장갑(surgical glove)]입니다.
수술용 장갑은 환자의 몸을 보호해줄 뿐만 아니라 의사의 몸도 보호해주는 중요한 수술도구입니다.
이는 미국의 의사였던 [윌리엄 홀스테드(William Stewart Halsted, 1852~1922)]에 의해 발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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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홀스테드(William Stewart Halsted, 1852~1922)]


홀스테드는 매우 뛰어난 외과의사였습니다.
1889년 개원한 미국의 존스 홉킨스 병원에서 1892년부터 외과과장 겸 외과학 교수로 재직합니다.
그는 질병 도려낸다는 우악스러운 수술법 대신 부드럽고 정확한 해부학적 수술기법을 미국에 도입하여 정상적인 생리기능을 수복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무균수술법 또한 미국의학에 정착시켰으며  다양한 수술법과 재발방지술을 만들어내며 미국 외과의학의 아버지라 불릴만한 업적을 세웁니다.

그는 소독약으로 염화수은제제를 사용하였습니다.
소독약으로 환자의 몸과 의료진의 손을 씻고 하였죠.
하지만 이런 소독약에 민감한 피부를 가진 수술실 간호사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반복된 수술에 피부염이 발생하곤 하였죠.
1890년 홀스테드는 이런 상황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음을 깨닫고 직접 라텍스 장갑을 착안하고 주문제작합니다.
그래서 최초로 수술용 장갑을 사용한 의료인은 간호사인 [캐롤라인 햄턴(Caroline Hampton, 1861~1922)]이 됩니다.
그리고 1890년 6월 4일, 38살이었던 홀스테드는 29살인 캐롤라인 햄턴과 결혼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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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라인 햄턴(Caroline Hampton, 1861~1922)]


생각해보면 피부가 민감한 간호사 대신 다른 간호사를 쓰면 간단하긴 했을 겁니다.
하지만 수술용 장갑을 발명한 이유가 있었겠지요.
이 사심가득한(?) 발명품은 이제 의학에서 없어서는 안될 도구가 되었습니다.
사랑의 힘은 정말 위대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