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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료실 일상(日常)

어떤 사고

by vitaminjun.md 2017. 6. 2.
10대후반의 어린환자가 어머니와 함께 응급실로 들어왔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죠?"
"몸살이 심해서요. 열도 나고 목도 좀 아프구요."

흔한 감기 환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상기도 감염을 고려하며 증상에 대해 하나씩 물어보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불편하셨죠?"
"이틀전부터요"
"기침이나 콧물, 가래는 있나요?"
"그런건 없어요."

차근차근 질문을 이어갔다.
마지막으로 질문하지 못한 다른 불편한 점은 없는지 물어보았다.

"왼쪽 팔에 두드러기가 좀 심했어요. 많이 붓고 빨개지고 그랬거든요."

응? 웬 두드러기?
다시 해당 증상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그리고 답을 듣는 순간 느낌이 좋지 않았다.


두드러기는 3주전부터 있었다.
3주전 친구들이 놀러왔길래 환자의 어머니가 밖에서 놀라고 용돈을 줬고,
그 용돈으로 외국인이 많이 있는 지역의 노래방을 갔다고 했다.
노래방에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는데 왼팔에 따끔한 느낌이 들었단다.
돌아봤더니 소파사이에 주사기가 꽂혀져 있는걸 발견했다.
사고였다.
그것도 매우 불운하고 불길한.


찔린 뒤 발생한 두드러기와 발적.
3주뒤 발생한 발열, 근육통, 인후통등의 증상.
머릿속에 한가지 단어가 떠올랐다.
[급성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증후군(acute HIV syndrome)]


우선 환자와 보호자에게 지금까지 내가 들었던 병력을 자세히 적은 진료의뢰서를 드렸다.
그리고 대학병원 감염내과에 반드시 가보라고 이야기했다.
여기서 더 안타까웠던 것은 일주일전쯤 아이가 병원에 가보겠다는걸
환자의 어머니가 그냥 있으면 가라앉는다고 참으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보통 어머니가 병원에 가보라고 하고 아이가 안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 환자의 경우는 상황이 반대였다.
만에하나 내 추측이 맞았다면 아이는 어머니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까 걱정이 되었다. 그때 가보라고 할껄이라며 후회하시는 어머니께 너무 자책하지 마시라고 이야기드렸다. 균이 발견되는 검사시기도 있고, 단순한 세균감염으로 그랬을 수도 있다고 말해드렸다. 그러나 차마 최악의 경우를 설명하고 이야기 해드릴 순 없었다.


환자와 보호자는 병원을 떠났다.
그저 그냥 단순한 감기였기를,
부디 내 추측이 틀렸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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