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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13

어떤 사고 10대후반의 어린환자가 어머니와 함께 응급실로 들어왔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죠?" "몸살이 심해서요. 열도 나고 목도 좀 아프구요." 흔한 감기 환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상기도 감염을 고려하며 증상에 대해 하나씩 물어보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불편하셨죠?" "이틀전부터요" "기침이나 콧물, 가래는 있나요?" "그런건 없어요." 차근차근 질문을 이어갔다. 마지막으로 질문하지 못한 다른 불편한 점은 없는지 물어보았다. "왼쪽 팔에 두드러기가 좀 심했어요. 많이 붓고 빨개지고 그랬거든요." 응? 웬 두드러기? 다시 해당 증상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그리고 답을 듣는 순간 느낌이 좋지 않았다. 두드러기는 3주전부터 있었다. 3주전 친구들이 놀러왔길래 환자의 어머니가 밖에서 놀라고 용돈을 줬고, 그 용돈으로 .. 2017. 6. 2.
어떤 노부부 이야기 한꺼번에 다양한 종류의 절망감과 슬픔에 사로잡혀 힘들었던 어떤 날의 이야기다. 병동에서 가끔 보았던 노부부가 있었다. 할머니는 폐암으로 입원한 상태였다. 암세포들은 폐에서 전신으로 퍼져 할머니를 괴롭히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간병인 없이 할머니를 극진히 간병했다. 사실 간병인을 쓸 여유가 없었다. 가족은 없었고, 병원비도 근근히 내었던 상황이었던 것이다. 할아버지의 몸도 정상이 아니었다. 그는 대장암이었다. 그나마 할머니보다는 몸상태가 좋았기에 간병을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노부부의 안타까운 사연은 주치의가 아닌 나에게도 전해졌다. 입원한 상태에서도 할머니의 몸 상태는 나빠져만 갔다. 통증은 강해지고 의식을 잃을 때도 있었다.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가 들어갈때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손만 잡고 있을 수 밖에 없.. 2017. 4. 22.
난감한 질문 "선생님. 아산병원, 삼성병원 다 가보고 검사도 다해봤는데 원인을 알 수 없대요. 이게 왜 그런거죠?" 난감한 질문이다.사실 환자도 뭘 찾아낼려고 나한테 물어본건 아닐 것이다. 여기서는 그냥 이전부터 계속 해왔던 대증치료만 해줄뿐이다.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고 여기에는 닥터 하우스도 없다. 'CT도, 랩도 안되는 시골병원에서 제가 뭘 어떻게 알겠습니까?' 이런 생각이 들지만 입밖으로 내뱉을 순 없다.그래도 다행인 것은 대증치료에 효과가 있는지 시간이 지나면 어느정도 만족하고 퇴원한다는 것이다. 행운인지 불운인지 그렇게 반복되는 처방은 환자의 차트에 차곡차곡 쌓여 몇십페이지에 달했다. 언제까지고 지속될 것 같은 환자의 상황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순했다. 챠트에는 적히지 않을 그저 약간의 공감과 위로를 .. 2017. 2. 23.
한해의 마지막 날 응급실 풍경 1. "아이고~속이 너무 아퍼. 메스껍고 미치겄네." "어제 뭐 드셨는데요?" "평상시랑 똑같이 먹었는디..." "그러니깐 평상시 어떻게 드셨는데요?" "별거없어...저녁때 그냥 소주 4병밖에 안먹었어." "...(하아)" 진단명 : 기타 알코올의 중독작용 2. 아빠와 아기가 같이 응급실로 들어왔다. 아빠의 손가락에 간단한 상처가 있어서 치료를 받으러 온 것이었다. 치료는 아빠가 받는데 같이온 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으앙~아빠 가지마~거기 들어가지마~" 아마 아빠가 무서운(?) 치료실로 끌려(?) 들어가는게 걱정됐나보다. 2017. 1. 1.
어떤 징병전담의사 이야기 1. 우리나라의 젊은 남성 대부분은 군대를 가기 위해 신검을 받는다. 그리고 이를 담당하는 의사가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젊은이들은 병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없을테니 별 문제 없으리라 생각하겠지만 생각보다 다양한 환자들이 존재한다. 병역을 이행할 수 없는 상태의 신체를 가졌다면 당연히 군면제를 받아야하겠지만 일부러 이를 노리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이들을 잘 구별해내고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할 수 있는 젊은이들을 찾아내는 것이 징병전담의사들의 일이다. 건너건너들은 카더라 이야기를 하나 소개할까 한다. 2. A는 신검에서 아무런 이상없이 무사통과되었다. 징병의는 마지막으로 10명을 주르륵 세워놓고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이 있거나 다른 질환이 있는지를 물었다. 현역판정을 받기 일보직전이었다. 그 때 A가 말했다... 2016. 12. 29.
인턴 모순(茅盾) 1. 모순(茅盾). 가장 깨끗하고 가장 더러운 순간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가? 2. 수술에 참여할려면 수술방에 들어가기전 손을 깨끗이 씻어야한다. 수술용 장갑을 착용하기에 맨손이 직접 환부에 닿지는 않는다. 허나 장갑이 찢어지는 경우가 생기면 내 손에 있던 무수한 세균들이 환자의 환부 깊숙히 들어갈 수 있기에 보다 철저히 씻어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위해 특별한 교육도 하고 지속적으로 주의도 준다. 3. 인턴 첫달은 정형외과였다. 이미 빼곡히 잡힌 수술 스케쥴에다가 간간히 터지는 응급수술들. 이로 인해 수술은 새벽까지 지속되었고 인턴이었던 나는 계속 보조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매 수술마다 손가락사이와 손톱, 팔꿈치 위까지 포비돈스크럽액과 거친 솔을 사용하여 뻑뻑 긁어냈다. 거친 솔에 의한 물리.. 2016. 9.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