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순(茅盾).

가장 깨끗하고 가장 더러운 순간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가?




2.

수술에 참여할려면 수술방에 들어가기전 손을 깨끗이 씻어야한다. 

수술용 장갑을 착용하기에 맨손이 직접 환부에 닿지는 않는다. 

허나 장갑이 찢어지는 경우가 생기면 내 손에 있던 무수한 세균들이 

환자의 환부 깊숙히 들어갈 수 있기에 보다 철저히 씻어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위해 특별한 교육도 하고 지속적으로 주의도 준다.




3.

인턴 첫달은 정형외과였다.

이미 빼곡히 잡힌 수술 스케쥴에다가 간간히 터지는 응급수술들.

이로 인해 수술은 새벽까지 지속되었고 인턴이었던 나는 계속 보조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매 수술마다 손가락사이와 손톱, 팔꿈치 위까지 포비돈스크럽액과 거친 솔을 사용하여 뻑뻑 긁어냈다. 

거친 솔에 의한 물리적 자극과 강한 소독약에 의한 화학적 자극은 내 손에 있던 세균들을 물리치는데 효과적이었다.


수술을 마친다고 그날 일이 끝나는게 아니다.

병동에는 그 날 해야할 드레싱이 잔뜩 기다리고 있다.

밤잠을 자는 환자들을 깨워 일일히 드레싱을 다하고 나면 새벽 1~2시가 넘었다. 

하지만 기상시간은 언제나 5시반이다.

정형외과 레지던트들의 회진준비를 위해 그들보다 더 일찍 일어나야했다.

환자목록표를 만들고, 교수님들이 마실 차들을 준비하고, 도로 침대에 누워버린 레지던트들을 어떻게든 깨워내야했다.

생존을 위한 수면욕이 더 강했기에 씻는다는 행위는 사치였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그리고 몸에서 냄새가 날 때쯤 깨달았다. 

내 손가락 끝에서 팔꿈치까지는 내 인생에서 가장 깨끗한 시기를 보내고있지만, 

이와동시에 팔꿈치부터 몸뚱아리까지는 내 인생에서 가장 더러운 시기라는 것을.

그래. 가장 깨끗하고 가장 더러운 시기가 공존할 수 있구나.

그럼 나는 더러운가? 깨끗한가?

팔꿈치에서 어깨사이 어딘가가 평범한 사람들의 평균적인 더러움이었을 것이다.




4.

이런 모순적이고 지옥같은 상황은 그 후 몇일이 지나서야 해결되었다.

왠지 많았던 수술이 줄었기에 쉬는 시간이 늘었고 몸을 씻는 사치를 누릴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후론 이런 역설적인 상황까지 오는 일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가끔 수술방의 모과 모선생님이 하도 안씻어서 냄새가 난다는 얘기가 들리곤 했다. 

그분도 모순속의 존재였을 것이다.

 

 

 


아니, 그분은 그냥 게을렀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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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문의 운영 vitaminjun.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