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첨성대에 대해 알려면 삼국시대 역사와 건축 역사를 찾아봐야할 것 같았다.

첨성대가 완공되었던 시절 중심으로 석조건축에 대해 알아보았다.

  

 

 

1.

우리나라의 삼국시대 석조건축물은 탑파건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탑을 만든 목적은 종교적 의미로 부처님의 사리나 다른 물건들(불경등)을 보관하기 위해서였는데 시작은 "나무"였다. 바로 "목탑"이다.

나무는 재료도 많고, 가공하기도 편해 이전부터 건축자재로 많이 쓰였다.

그러니 탑의 첫 시작이 목탑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후 탑파건축양식은 "목탑"에서 "벽돌"로 만든 "전탑"으로 발전하였고 이후 "돌"로 만든 "석탑"으로 완성된다.

 

 

 


2.
서기 634년, 신라. 분황사 9층 모전석탑 완공.

 


 

분황사 모전석탑

사진출처 : 문화재청

 


모전석탑이란 구워만든 벽돌이 아닌 돌을 깎아 벽돌모양을 모방해(모전, 模塼) 만든 탑이라는 뜻이다.
분황사 모전석탑은 원래는 9층이나 현재는 3층만이 남아있다.
중국의 전탑양식과 재래의 목탑양식이 혼용되어 만들어졌는데 일단 모전 덩어리 하나가 크지 않다.

회흑색의 안산암을 벽돌모양으로 잘라서 쌓아 올린 것이다.

벽돌이 무너지지 않게 쌓아 올리는 것이 힘들기는 하지만

덩어리 자체가 크지 않아 기술적인 한계는 크지 않아 보인다.
어느정도 높이에 이르면 나무로 만든 비계를 사용해서 벽돌을 날랐을 것이다.


 

 비계란 건설, 건축등에서 사람이나 장비, 자재등을 올려 작업할 수 있도록 임시로 설치한 가시설물등을 뜻한다.


 


3.

서기 639년, 백제. 미륵사지 9층 석탑 완공.


 


 

현재 미륵사지 석탑(서탑)은 복원공사 중에 있다.

2017년 7월 완공예정.

 



 

1993년에 복원된 미륵사지 동탑.

유흥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이를 '허망과 허상의 복원탑'이라고 하였다.

 

 


석탑 비스무리하게 만든 신라에게 자극을 받아서였을까?
백제는 우리나라 최초의 석탑을 만들어 낸다.
이전까지 만들어왔던 것이 목조탑이었기에 그 양식대로 만든 9층짜리 석탑이었다.
궁금증이 생긴다.

9층석탑을 쌓기 위해서는 돌덩어리를 높게 올려야하는데 크고 무거운 돌덩어리를 어떻게 올렸을까?


해답은 기중기였다. 백제인들은 기중기를 만들어낸다.


 

미륵사지 서탑과 동탑의 남측에는 H자형 평면을 이루는 석렬과 구덩이가 발견되었다.

석렬의 크기는 남북 방향으로는 820cm의 길이였고 동서방향으로는 603cm 이었다.

그리고 더 남쪽으로 3개의 목심이 발견되었다.

 



이 H자형의 석렬이 기중기의 받침이었다.
이 받침에 목조구조물을 세워 지지대를 만들었고 추가적인 축을 만든다.

그리고 단단하고 긴 목재를 축에 연결하고 밧줄을 단다.
이 밧줄에 돌덩어리를 묶어 중앙 목심을 돌려 끌어올린뒤,

어느정도 높이가 되면 고정 시키고, 가측의 목심을 이용해 수평이동을 시킨다.

 

백제인들은 이런 방식으로 높은 석탑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 Reference ]

미륵사지 동서석탑 운반시설의 고찰 / 미륵사지 서탑 주변발굴조사 보고서, 2001

 

 

 

4.
서기 645년, 신라. 황룡사 9층 목탑 완공.


 


 

황룡사 9층 목탑 추측도.

사진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2/12/2012121200055.html?Dep0=twitter&d=2012121200055

 

 

신라에는 당시 백제와 같은 기중기를 만들 기술은 없었을라나?
없었을 것 같다.
그러니 황룡사 9층목탑을 세우기 위해 백제의 기술자인 아비지를 초청하였을 것이다.

당시 신라와 백제는 피터지게 전쟁중이었는데 어떻게 기술자를 초청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찌됐든 신라도 백제처럼 백제가 만든 거대석탑에 자극받았는지 거대목탑을 만드는것에 성공했다.

황룡사 9층 목탑은 아쉽게 고려시대 몽고의 침입때 소실되었다.

 

 

 

5.
서기 647년, 신라. 첨성대 완공.

 

황룡사 9층 목탑을 만들어 자신감이 붙었는지 신라는 이제 석조건축물을 만들려고 했다.
바로 첨성대다.
근데 첨성대의 돌은 2.의 분황사 모전석탑의 재료와 다르게 크고 무겁다.
나무나 모전은 쉽게 쌓아올릴 수 있겠지만(돌에 비해 상대적으로) 돌덩어리는 그렇게 하기 힘들다.
백제의 기중기 기술이 전파 됐을까? (산업스파이 아비지?)
아니면 신라 고유의 기중기 기술을 개발해냈을까?




 신라 천문학자 : 하늘을 관측할 수 있는 건물을 지을꺼야. 

돌로 만들거고, 동글동글하게. 그것도 1년을 상징하게 362개만 쓰는거야.


신라 건축가 : 이야 멋진데? 근데 어떻게 쌓아올릴꺼야?


신라 천문학자 : 그건 니가 생각해내야지.

 



첨성대 시공방법에 대해 알려진건 많이 없으나 제시되는 이론 중에 흙 비계를 사용한 방법이 있다.
피라미드나 고인돌을 만들때처럼 흙을 쌓아 경사를 사용한 것이다.
거대왕릉은 수시로 만들어댔었으니 흙 쌓는건 별 문제 없었을 것이다. 
방법은 다음과 같다.

 

 

 

 

한 단을 만들고, 단 내외부에 흙을 쏟아 넣는다.
그리고 단 외부에 만들어진 경사면을 사용해 돌을 옮겨 다시 두번째 단을 쌓는다.
이런식으로 반복하여 단을 쌓아 올리는 것이다.
끝날 때가 되면 거대한 흙무덤이 만들어졌을 텐데 이 흙을 치우는 것이 마무리 작업이 된다.
첨성대 안에 있는 흙도 파냈을 텐데 중간창 아래 부분은 흙이 그대로 남아있다.
어차피 꼭대기까지 올라갈 목적으로 만들었으니 아래의 흙들은 바닥으로 남겨둔 것이다.



 

[ Reference ]

첨성대 건립에 대한 시공방법론 -첨성대의 얼개를 통한 논증- , 2009

 

 


6.
첨성대 내부에 흙과 자갈이 들어가있고, 윗단으로 가면서 크기가 점점 줄어들어 안정성이 높아졌다.

덕분에 첨성대는 오랜 세월과 환경의 풍파속에서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진때문에 이렇게 만든게 아닌 것 같다.

첨성대가 내진설계가 되어있다가 아니라 만들다 보니 튼튼한 형태로 만들 수 밖에 없었다가 맞는게 아닐까?

첨성대는 그 자체로 우수한 문화재임은 틀림없다.

허나 끼워맞추기식의 과도한 찬양은 조심해야하지 않을까?





Posted by 전문의 운영 vitaminjun.md